해마다 찾아오는 꽃샘추위라지만 벌써 1주일을 넘기고 있는 그놈이 진저리쳐지는 아침이다. 제휘야, 주석아! 잠을 잘 잤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굳이 묻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 인생을 걸고 결단한 행동에 대해 그런 안부조차도 의례(儀禮)가 될까 두려워서이다.
벌써 며칠이 지나면 한 달이 다 되어가는구나. 1주일쯤 뒤 딱 한번 찾아갔었는데 그것도 너희들 보려고 간 것이 아니다. 그저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어서 갔을 뿐, 무전기로 통화를 시도해보라고 했지만 그 조차도 익숙지 않다는 핑계로 거절하고 그냥 나왔다.
못 도와줘서 부끄럽고 미안할 뿐
너희들이 하늘로 올라간 그날, 소식을 듣고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은 하얀데 가슴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막막함으로 차오르고 그런 상태로 오늘까지 지내고 있다.
그동안 그곳을 찾지 않았고, 집회 한 번도 나가지 않은 것은 무슨 일이 바빴거나 그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내 역할을 다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것 같은 내 스스로가 두려워서다. 지난 십 수년을 지켜보았고, 지금은 같은 건물에 사는 한 식구로서 도움이 될 만한 아무런 능력도 갖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다.
내 기억으로 내 나이 또래 누구나 알 정도로 로케트 밧데리는 유명했었다. 그러다 90년대 초반 공장 일을 나가던 무렵에 누님들로부터 들었는데 어렸을 적 이미지와는 180도가 다르더구나.
그러다 너희들을 만났고 벌써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구나. 광주에서도 노동자들에게는 악질로 유명한 회사에서, 차라리 없느니 만도 못한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려고 그동안 흘린 너희들의 피와 눈물이 얼마더냐!
주석아, 제휘야! 힘들겠지만 난 너희들을 믿는다. 그리고 광주시민들을 또한 믿는다. 7년 전 겨울, 회사 앞에 천막을 치고 기나긴 싸움을 시작할 때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믿음이었다. 기아자동차 노동자들, 광주시민들,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것은 그 어떤 황금으로도 살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요, 그 어떤 권력의 힘으로도 뺏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쪼그려 않기조차 불편한 그 좁은 공간이지만 지금 너희들이 갖는 신념은 우주보다 커야한다. 오늘 두 사람의 심정은 29년 전 도청을 사수하던 바로 그 자리의 광주시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아니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의 신앙이 되어온 부처나 예수님의 마음이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난한 백성들 몸, 부디 아끼길
새삼스레 너희와 대척점에 있는 김종성 회장의 인사말을 옮겨본다. “시대를 뛰어넘어… 만족을 드려왔던 로케트전기. - 중략 -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경영원칙을 더욱 확실히 실천해 우량기업으로…” 그랬구나.
경영상태가 어렵지만 주주들(사실은 최대주주인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만큼은 최대이익을 보장하다 보니, 올해 1월 24일에는 코스닥 시장에서 ‘금일 상한가 1위’를 달리고, 그러느라 너희들을 잘라내고 잘라낸 그 공정을 바로 담장 너머 로케트 정밀에다가 세웠구나.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는 동네에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고, 그거 한 대 팔면 해고자 열 명 쯤 거뜬히 먹여 살릴 외제차를 끌면서도 여전히 회사는 어렵고 그 대가를 온전히 너희들만 치루고 있구나.
부족하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하마. 그리고 이미 너희들의 몸은 광주시민들의 것이요, 이 시대 가난한 백성들의 것이니 부디 함부로 여기 말고 아끼거라.
기사작성일: 2009-04-03 (시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