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스토리생활 대리주부 홈페이지 갈무리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 시행 3년째다. 가사근로자법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사각지대에 놓인 가사노동자를 가사서비스 인증기관이 직접 고용하고, 사회보험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 지 7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가사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는 길을 열었다. 법 시행 뒤 직접고용 가사노동자는 조금씩 늘고 있지만 속도는 더디다. 정부 인증기관에 직접고용된 가사노동자가 아니면 일하다 다치거나 사망해도 가사노동자를 보호해 줄 방안이 없다. 가사노동자 이정숙(59)씨의 사례를 토대로 플랫폼 가사노동의 현실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이정숙씨(59)는 매니저로 일하던 식당이 코로나로 문을 닫자, 2020년 가사노동 시장에 뛰어들었다. 고객의 집 크기, 청소 시간에 따라 일당은 오르내렸다. 4시간 청소 기준 통상 5만원 수준의 일당이 떨어졌다. 고객 집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중 ‘대리주부’ 매니저용 앞치마를 한 가사노동자가 말을 걸었다. “4대보험도 적용해 주고, 일당도 더 높아요.” 그가 일하던 플랫폼업체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준다는 말이었다. 정숙씨의 말을 빌리면 4대보험 해준단 말에 뿅 갔다. 고민 끝에 대리주부 어플리케이션에 가입해 일을 시작했다.

정직원이 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일했다는 표현이 맞다. 지난해 8월 한 달간 그가 대리주부 앱을 통해 일감을 구하고, 일한 시간은 204시간에 달했다. 그런데 정직원이 되기 위한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그는 산재를 신청했지만 대리주부 앱을 운영하는 홈스토리생활측은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았다며 근로자 자격을 부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정숙씨의 산재보험 피보험 자격을 불인정했다. 정숙씨는 공단 서울강남지사를 상대로 고용보험 피보험자격확인 청구 불인정처분취소 청구를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정숙씨는 현재 재심사청구를 준비 중이다. 대리주부 플랫폼 가사노동자 정숙씨는 과연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새벽에 하던 일 그만두고,
대리주부 매니저 일만 했는데…

“청소업체는 원래 4대보험 가입이 안 되는데, 대리주부는 4대보험 가입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정숙씨가 하고많은 청소플랫폼 업체 중 대리주부를 택한 건 4대보험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가사근로자는 4대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다. 하지만 2022년 가사근로자법 시행으로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면, 4대보험도 적용받을 수 있다. ‘대리주부’는 정부 인증을 받은 업체다.

정숙씨가 대리주부 플랫폼에 매니저로 가입한 건 지난해 5월7일이다. 가입시 체크하는 ‘채용희망(4대보험 혜택 등)’란에 채용을 희망한다고 표시했다. 월 6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는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새벽에 하던 일도 그만뒀다. 정숙씨가 확인한 정직원 채용조건은 매월 최소 60시간 이상 근무, 2023년 기준 1961년생 이하였다. 직접고용에 걸릴 게 없었다.

“내년이면 60세가 넘어 국민연금에 가입이 안 되거든요. 단 1년 만이라도 국민연금을 내고 싶어서 대리주부를 택한 거죠. 대리주부 대표 인터뷰 기사를 보니깐 아주 좋은 회사 같더라고요.”

대리주부 앱을 운영하는 한정훈 홈스토리생활 대표는 2019년 규제 샌드박스 기업으로 선정된 후 “1천명의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겠다”고 말해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정숙씨가 스크랩해 보관 중인 인터뷰 기사에서 한 대표는 “가사도우미 직접 고용은 직업 안정성과 근로자 권익이 확보돼 서비스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대리주부 정식직원 신청 안내에 따라 지난해 6월10일 “정식직원 신청합니다. 7월1일부터요.”란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기존에 하던 새벽일과 병행하느라 5월 49시간 일했고, 6월부터 근무시간을 늘려나갔기 때문이다. 정숙씨는 6월 104시간, 7월 91시간, 8월 204시간씩 일했다. 하지만 회사는 채용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손목 골절로 병원 가는데,
돌아온 답은 “고객에게 안내했나?”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고, 일한 지 세 달이 지난 8월29일 사달이 났다. 고객의 집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올라오던 중 공동현관 앞에서 미끄러졌다. 넘어진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 그는 두 발짝 떼기도 전 또다시 미끄러졌다. 넘어질 때 바닥을 짚은 오른쪽 손목이 퉁퉁 부어올랐고, 통증이 심했다. 그는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택시를 타고 집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손목 골절 진단을 받았다.

대리주부측에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 대리주부는 가사사용인(고객)과 가사노동자(매니저)를 중개하는 플랫폼이다. 요금은 고객 집 크기와 청소 시간, 매니저 등급(마스터>스타>홈)에 따라 달라진다. 대리주부는 고객이 지급한 요금 중 수수료를 제한 금액을 가사노동자에게 지급한다. 매니저가 업무중 문제가 생기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예정된 시간에 고객 집에 방문하지 못하는 경우 관련해 문의할 수 있는 방법은 대리주부가 공지한 대표번호로 문자 혹은 카카오톡을 보내는 일뿐이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가 일하다 넘어져 병원 가요. 전화 주세요.” 흔들리는 택시 안에서 한 손으로 힘겹게 눌러쓴 문자였다. 대리주부 매니저 상담창구에서 돌아온 답변은 냉담했다. “매니저님 문자로 남겨 주십시오. 일단 오늘 오후 서비스를 몇 시 몇 분까지 했는지, 고객한테 안내를 어떻게 하고 나왔는지부터 알려주세요.”

정숙씨는 오른 손목 골절로 한 달간 일을 못하니, 관련 처리를 요청했다. 대리주부측 상당직원의 답변은 처음과 동일했다. “오늘 오후 서비스를 몇 시, 몇 분까지 하시고 고객한테 안내를 어떻게 하고 나왔는지부터 알려주세요.” 이씨는 당혹스러운 상태에서 다친 경위와 퇴실 시간을 답했다. 진단서도 첨부했다. 또다시 돌아온 대답은 “(사고에 대해)고객에 안내했나요”였다. 이씨가 그렇다고 답하자, 상담직원은 “지금 매니저님이 방문 예정인 일감이 매우 많습니다. 모두 다 고객에게 안내하고 저희한테 다시 문자 주세요. 당장 내일 시작 2건 지금 바로 고객에게 양해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일정도 다 안내 후 저희한테 문자 주세요.”라고 답했다.

당시 상황을 전하는 정숙씨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제 상태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고, 고객님한테 어떻게 말을 하고 퇴실했는지 묻는 게 전부였어요. 골절이 돼서 집에 가만히 있는데, 너무 서럽잖아요. 답답했죠. 대표님을 만나야겠다 싶어서 회사로 전화했죠. 근데 또 전화가 안 돼요. 회사로 찾아갔죠. 오전 9시쯤이면 문 열겠지 했는데 10시30분까지 기다려도 아무도 없어 허탕치고 왔어요.”
 

본인 제공
본인 제공

 

앱 먹통 돼 회사 찾았지만
“아무나 들어오면 안 돼” 문전박대

돌이켜보면 회사로부터 문전박대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업무와 관련해 문제가 생겨 회사에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기 일쑤였다.

지난해 6월 중순께 이씨는 오전에 고객 집에서 일을 마친 뒤 오후 고객 집으로 이동하던 중 앱 오류로 고객 집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가 먹통이 되는 경험을 했다. 고객센터로 연락했지만, 연결이 닿지 않았고 이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대리주부 사무실을 찾았지만 “아무나 들어오면 안 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진짜 어이가 없더라고요. 대리주부 매니저로 고객 집을 관리하는데 회사로 전화해도 통화가 안 되고 오후에는 이동해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앉으란 말도 안 해서 그냥 제가 의자 빼고 앉았어요.” 이씨에게 당시 경험은 여전히 쓰라린 상처로 남았다.

결국 회사는 앱 오류를 해결하지 못했고, 정숙씨는 휴대폰 대리점을 찾아 문제를 해결했다.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씨와 똑같은 앱 오류가 발생할 경우 스마트폰 설정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관한 설명을 공지했다.

정숙씨는 그 일을 “첫 번째로 찍힌 날”로 기억했다. ‘두 번째로 찍힌 날’은 같은달 회사에 영유아 기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날이다. 당시는 영유아보육법이 개정되기 전으로 법상 영유아 기준은 6세 미만 취학 전 아동이다. 하지만 고객이 체크하는 영유아 기준은 ‘7세 이하’로 설정돼 있었다. 가사노동자에게 영유아가 있는 가정은 젖병, 장남감, 매트 등을 추가 관리해 업무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정숙씨는 영유아 기준을 법에 맞춰 줄 것을 요구했고 결국 대리주부측은 이씨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표기 기준을 바꿨다. 이후 영유아보육법이 개정돼 법상 영유아 기준은 7세 이하로 바뀐 상태다.

“돈 문제 떠나 괘씸하다”
가사노동자도 4대보험 적용해야

정숙씨는 당시 오른쪽 손목 골절 이후 가사노동 일을 하기 어려워졌고,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엑스레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상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새끼손가락과 약지가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물건을 집었다 떨어뜨리기도 하고요” 그는 일을 그만둘 형편이 못 돼, 지인 가게 계산대를 잠깐씩 봐주며 생활비를 번다.

현재로서 산재 신청은 쉽지만은 않다. 재해가 발생한 직후 이씨는 산재를 신청하려 공단 서울강남지사에 방문했지만,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확인청구를 했다. 공단은 이씨가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이 없다고 봤다. 공단쪽은 “사업장 매니저 등록안내문이 ‘대리주부’ 앱을 통해 근무한 매니저가 모두 4대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직접 고용된 사업주의 지휘·감독하에 업무지시를 받고 근무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씨는 이에 불복해 강남지사를 상대로 고용보험 피보험자격확인 청구 불인정처분취소 청구를 제기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고용보험심사관의 판단도 같았다. 고용보험심사관은 “청구인(이정숙)이 정식직원 채용을 신청했지만, 사업장에서는 ‘신청자 모두 정식직원(4대보험)으로 채용하지 않으며 근무건수·근무기간·근무평점·해당 지역 주문량 등을 모두 파악해 별도 선정한다’는 안내문자를 보냈다. 근로계약이 체결됐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숙씨는 해당 문자를 받은 기억이 없다는 입장이다.

홈스토리생활 관계자는 “가사노동 플랫폼인 만큼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지원해 일할 수 있다”며 “(매니저가) 4대보험이 필요한 직접 고용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히면, 고객의 평점, 그동안 일 했던 내용을 감안해 채용한다”고 설명했다.

정숙씨는 재심사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너무 억울하니깐, 회사의 태도가 괘씸해서 그런 거예요. 또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할까 봐서요. 청소 플랫폼업체도 무조건 4대보험 가입하게 바꿔야 해요. 제가 다쳐보니깐 산재보험이 꼭 필요해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매니저 직접고용 안 하면 안 되잖아요."

가사근로자법 제정에도 정숙씨처럼 여전히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