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빈곤문제연구소는 지난 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창립7주년을 기념해 '외환위기 시 퇴출된 중산층의 10년 후의 빈곤 실태조사'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날 조사결과는 지난 98년 외환위기 때 정부 정책에 따라 퇴출된 충청은행에서 일하던 임직원 945명(응답자 46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결과에 따르면 충청은행 일할 당시 이들은 한 달 평균 321만5천원을 벌었다.

당시 도시노동자 평균소득의 50%인 106만6천원 이하로 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퇴출 후 10년, 이들의 평균 소득은 189만1천원으로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

응답자의 50.6%는 도시노동자 평균중위소득의 50%인 164만1천원 미만을 벌고 있었다.

대부분이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퇴직 직전과 현재 순자산을 비교할 때도 다수인 74.6%가 낮아졌거나(18.9%) 매우 낮아졌다(55.7%)고 답했다.

지난 10년 동안 부동산 가격은 평균 92.4%가 올랐지만 많은 이들이 오히려 자산이 준 것이다.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은 "10년 전 갑자기 불어 닥친 외환위기로 금융권이 초토화되면서 많은 금융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며 "노동시장 퇴출 후 재진입 통로가 막히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인간적 고통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교육부실로 이어져 빈곤이 대물림되고 가족갈등의 수위도 높아지면서 가족해체까지 이르는 극단적인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조사에 응한 한 노동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아빠는 왜 농협에 입사하지 않고 충청은행에 입사했냐'고 물을 때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류 소장은 "다른 금융기관이 아닌 하필이면 충청은행에 입사했다는 원죄 하나 때문에 퇴출 노동자 대다수가 지난 10년 동안 빈곤하게 살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일자리를 잃은 충격은 이들에게도 컸다.

퇴직 후 심리적 손상 정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는 '억울함을 느꼈다'는 낮은 수위의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전부인 99.2%가 그렇다(4.1%)거나 매우 그렇다(95.1%)고 답했다.

절망상태에 이른 사람도 92,5%였고, 자살충동을 느꼈다는 이들도 60.5%나 됐다.

보복충동을 느꼈다는 사람은 80.3%였다.

자학을 넘어서 사회에 대한 폭력적 불만표출(보복)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23.9%를 현재 무직으로 노동시장 재진입에 실패했다.

고용이 됐더라도 비정규직이 3분의 2 이상이었다.

전체 응답자 중 정규직에 취업한 사람은 15.9%였고, 비정규직은 33.0%였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도 27.2%에 이르렀다.

퇴출 후 재취업교육을 받은 사람은 18.5%에 불과했다.

류 소장은 "비록 은행과 함께 퇴출된 사람들이지만, 당시에는 상위 3%에 들었던 인재들이었다"며 "훌륭한 인재들이 재취업을 하지 못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구조적인 퇴출을 시행하면서도 재취업 교육 등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등 이들을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재율 금융노조 정책본부장은 "외환위기 구조조정 당시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다른 사람을 내보낸 사람 중의 하나였다"라며 비통해했다.

김 본부장이 일하던 옛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에서 구조조정이 일 때, 그는 노조 간부였다.

김 본부장은 "살아남은 자로서 슬픔을 늘 간직하고 있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도 노조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내려야 한다고 했던 것이 바로 정부 관료였다"며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그때 외환위기를 불러온 당사자와 정부 정책을 결정했던 이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외환위기로 많은 노동자가 퇴출당하면서 자영업자가 OECD 평균의 배가 넘는 30%를 이르고 비정규직이 급속히 늘어나는 등 기형적인 노동시장 구조가 자리 잡았다"며 "퇴출된 사람들에 대한 통계적 수치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하고 자료를 정리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작성일: 2008-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