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한 대법원의 최근 판결과 국제노동기구(ILO)의 교섭권 보장 권고에도 불구하고 개별사업장에서 원청과 사내하청노동자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노사갈등이 장기화할 뿐만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단식농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대법원 판결과 ILO권고에 대한 후속조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륭전자 집단 단식농성 34일째

대표적인 곳이 불법파견과 기상천외한 '문자메시지 해고'로 알려진 서울 금천구 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에 있는 기륭전자다.

14일 노동계에 따르면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분회장 김소연)의 국회 항의농성으로 이뤄진 노사교섭은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지난 11일 단 한차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향후 교섭을 기약하기 힘든 상황이다.

앞서 노사는 지난 5월에도 교섭을 진행했다.

조합원들의 서울시청 앞 조명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직후였다.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들은 지난달 11일부터 공장 앞에서 34일째 집단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소연 분회장은 "노동부 관악지청에서 16일께 교섭을 재개하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측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다"며 "조합원들이 고공농성·항의농성하면 교섭 한 번 해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기륭전자는 2005년 8월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생산직 300여명 가운데 정규직은 10여명 남짓이었고, 대다수가 파견직(250여명)과 계약직(40여명)이었다.

분회는 정규직화를 요구했지만, 회사측은 문자메시지 해고로 맞섰다.



◇현대차·코스콤도 '갈등 중'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아산공장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근속승계를 놓고 신규하청업체와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신규업체가 근속을 인정하지 않고 신규입사를 요구하고 있는 데 반해 노조에서는 관행과 단체협약을 들어 근속인정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아산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집회와 피켓팅 등을 통해 7개월째 근속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울산3공장에서는 지난해 9월 신규업체가 하청노동자 5명의 근속승계를 거부하기도 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 비정규직문제는 제조업의 편법적인 도급관행이 금융분야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다.

코스콤 비정규 노동자들은 "코스콤 역시 현대미포조선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을 직접관리했다"며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76시간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원청 사용자성·교섭권 보장 필요"

정부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사내하청 갈등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기업들은 인사 및 노무관리의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정부는 대법원 판결과 국제기구의 권고를 받아들여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장되도록 권련법 개정과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총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가 원청이라는 판결은 향후 비정규직법에 원청사용자성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분명한 근거"라며 "정부가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성일: 2008-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