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경기 군포시에 있는 케피코(KEFICO) 공장 뜰에도 비가 내렸다.

현대자동차와 독일계 보슈의 합작회사. 엔진제어장치, 센서류, 연료분사장치를 만들어 현대자동차에 납품한다.

900여명 가운데 조합원은 690명, 그 가운데 521명이 파업 결의 투표에 참가해 64% 찬성률을 보였다.

이날 주간조 조합원들 200여명이 정규 작업 종료 시간보다 두 시간 이른 3시30분에 일손을 놓고 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장명권 지회장이 투쟁사에 이어 결의문을 낭독했다.

“미국산 쇠고기 고시 철회하고 재협상 실시하라, 금속노조 사용자는 중앙교섭에 성의 있게 임하라, 불공정거래를 중단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라, 교대제 해소하고 월급제를 실시하라.”

비가 오지 않았다면 파업 열기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을까.

버스 다섯대에 몸을 실은 조합원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었다.

촛불의 자발성을 기대하기엔 조합원들의 일상은 고단하다.

청소, 경비, 식당 말고는 그래도 모두 정규직이다.

하지만 월급제가 아닌 시급제.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는 현실이 아니다.

학생들의 자율학습이 자율이 아니듯, 8시간 근무한 뒤 2.5시간 잔업은 거의 필수적이다.

2.5시간 잔업 시간은 50% 가산해 3.75시간으로 계산한다.

야간과 주말도 마찬가지.

박한 시급을 잔업으로 채워야 하는 구조다.

365일 가운데 360일 일한 노동자도 있다는 장 지회장은 구제금융(IMF) 사태 이후 운동과

학습 등 모든 게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산별로 전환했지만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사업장별 임금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란다.

구제금융 사태는 재벌 지배구조를 바꾸지 못한 대신 노동계 구조조정은 물론 의식에도 엄

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민주개혁’ 정권이 들어섰으나 회사 쪽에 기운 노사관계에는 변화가 없었다.

보신주의는 점차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전염됐다.

누구나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

사회안전망은 허술하다.

한번 늪에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기륭전자, 이젠텍 노동자들이 목숨 끊는 것 말고는 다해 보지만 세상은 작은 요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연대의 대상이기보다는 반면교사다.

여력이 없기도 하지만 설령 연대한다고 해도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싸워서 이겨 본 경험이 언제 있었던가.

내가 비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아무도 나에게 연대하지 않거나 연대할 여력이 없다는 점을

나를 통해 알고 있다.

서울시청 앞 광장, 비를 맞으며 저녁식사를 마친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위원장과 금속노조

위원장의 투쟁사를 들었다.

뒤이은 촛불 미사에 참가한 시민의 우비에 써 있었다.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지금껏 ‘된’ 적이 없는데, 촛불은 과연 우리에게 “모이

고 또 모이니 되더라”의 경험을 갖게 할 것인가?

촛불이 정말 ‘된다면’ 노동자들의 연대의식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작성일: 2008-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