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분회장은 울어도 윤종희 조합원은 울지 않는다. 윤종희 조합원이 울면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모두가 운다. 그렇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에서 윤종희 조합원은 언제나 ‘보루’와 같았다. 모든 투쟁의 보루. 늘 그랬다. 투쟁의 선두에 김소연 분회장이 있다면, 후미에는 언제나 믿음직한 윤종희 조합원이 있었다.

그런 그가 눈물을 흘린다. 4년간 투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참다못해 흘리는 눈물만큼 서글픈 눈물도 없다. 그러나 눈물은 증오와 편견보다 낫다.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 년 간 변함이 없다. 공장에서 일해 본 노동자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 몇 사람 납득시키는 일이 쉽지가 않다. 자기의 목소리를 죽이고, 양심마저 지운 채 노예처럼 하는 노동은 비참하다. 하지만 비참한 노동이야말로 ‘노동운동’을 잉태한 어머니와도 같다. ‘인간다운 노동’을 꿈꾸는 일, 노동자에게는 그 자체가 노동운동이기 때문이다.

21일 오후 1시 35분경, 김소연 분회장은 기륭전자 공장 앞에 세워진 10미터 높이의 철탑에서 여경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내려왔다.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의 배려는 일시에 달려들어 김소연 분회장의 팔과 다리를 철탑에서 떼어내는 일이었다.

그의 울부짖음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실 김소연 분회장은 94일간 단식한 뒤라서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그를 강제로 뜯어내는 힘은 오장육부를 뒤틀고, 말라붙은 근육을 헤집기에 충분했다. 그의 눈물은 오직 비탄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기륭전자 직원들은 “굶기는 한거냐”고 묻거나 “뛰어내릴 수 있으면 뛰어내려라”고 조롱했다. 그들의 조롱을 참지 못한 시민들이 항의하면 “일당 받고 나왔냐”고 비웃다가 “북한에나 가라”며 궤변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철탑이 해체된 후, 기륭전자가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모범적 기업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수출을 통해 이 나라에 이바지 할 것입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이런 식이다. 윤종희 조합원이 사측 방송을 듣다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다문 입술을 연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왜 때립니까. 누워있는 사람을 발로 걷어차고 쓰레기라고 부르고. 그 와중에 12명이나 연행이 됐어요. 용역직원들이 경찰을 도와서 시민들을 연행하는데 가만 볼 수가 없잖아요. 우리가 막으니까 경찰들이 공무집행 방해라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따졌어요. 이게 무슨 공무집행이냐. 국민 위한 게 공무집행이지 용역깡패 보호하는 것이 공무집행이냐. 그래도 듣지를 않아요. 폭력에 항의하는 사람들만 연행하고. 정말이지.”

기륭전자 생산직 노동자 250여명은 2005년도에 사측의 불법 파견을 문제 삼으며 조합을 결성했다.

당시 생산직 노동자 300여 명은 정규직 9명을 제외하고 계약직 40여명과 대부분은 파견직이었다. 이중 250명이 조합에 가입했으니 그 열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소위 ‘물갈이 해고’로 불렸던 사측의 해고 방식은 파견직이라는 지위를 악용해 3-4개월 주기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강요하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고, 이것이 노동조합 결성의 직접적인 원동력이 됐다.

기륭전자분회는 노동부가 사측의 불법 파견을 인정한 만큼,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 파견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되면서 ‘현대판 인신매매’라는 별칭까지 얻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를 시정하는데 소극적이었고, 사측은 계약기간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순차적으로 해고하기 시작했다.

현장내 CCTV설치, 조합원 부서이동, 백지탈퇴서 작성 강요, 계약서 재작성요구, 계약해지로 이어지는 사측의 노조탄압으로 말미암아 기륭전자 분회는 급속도로 와해되기 시작했다. 사측은 교섭을 진행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사직서를 강요하는 이중적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기륭전자분회는 장기투쟁사업장의 반열에 들어서고 말았다. 1000일동안 지리멸렬한 공방이 계속됐다.

사측은 정리해고와 관련해서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근거로 기륭분회에 손배, 고소고발 등으로 맞섰다. 때로는 구사대를 동원해 직접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기륭분회는 불법파견에 대한 문제 해결은 기륭전자 측에 있다는 투쟁의 원칙을 세우고 1000일 넘게 정규직 복직을 요구해왔다.

“이빨 부러지고 다리가 골절되고, 안면을 맞아서 피를 질질 흘리고 ... 이게 말이 되나요. 대한민국에는 국민이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국민이."

윤종희 조합원이 공장을 응시한다.

“기륭전자는 국내에 생산라인을 두지 않으니 정규직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국내에 생산라인이 있었어요. 우리를 속인 것이죠. 저희는 어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라고 요구 했어요. 원래는 즉각적인 정규직화를 요구했지만 사태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사측은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어요. 우리를 그렇게 부려먹고도 책임을 못지겠다니.”

기륭전자분회와 사측 간에 끝장교섭 국면이 열린 것은 8월경. 6월에 한차례 잠정합의안이 도출되기도 했지만, 사측은 일언반구도 없이 일방 파기를 선언했다.

이후 6월 합의안을 중심으로 재논의하자는 분위기였으나, 한나라당이 사측과 만나 합의안을 작성해 문제는 더욱 꼬이게 됐다. 새로운 안이라는 것이 합의정신을 무시한 채, 과거보다 훨씬 후퇴된 내용을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중재에 나서면서 8월 무렵 끝장교섭이 진행됐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결렬됐다.

김소연 분회장이 94일간 단식을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교섭을 요구했고, 추석을 전후에 한차례 끝장교섭이 열렸다. 하지만, 여기서도 정규직화 방안에 대한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사측은 보상금 문제 때문에 합의하지 못했다고 언론에 공표했지만, 노조는 정규직화 방안 때문에 합의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민들을 중심으로 기륭의 주요 납품업체인 시리우스 본사에 대한 원정투쟁이 논의됐다.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기륭전자를 상대로 불매운동 및 사회적 고립 등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측도 시리우스 원정투쟁에 대해 불만이 높았다. 원정대 출발 이틀을 앞두고 진행된 끝장교섭에서 노조는 자회사 설립을 요구했고, 기륭은 신설회사를 설립하고 2년 뒤에 논의하자는 방안을 내놓아 결국 결렬됐다.

그리고 원정대가 출발하는 당일 새벽, 기륭전자는 공장내 설비 등을 반출하는 과정에서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했다.

사전에 준비된 지게차와 미리 대기중인 용역 직원과 사측 직원들이 동원됐다. 이들은 조합원은 물론, 기지와 시민들까지 폭행하며 ‘무법’의 정의를 세웠다. 경찰은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기륭전자는 본사를 이동하겠다는 입장을 공표했고 이후 용역직원들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폭력사태를 유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경찰이 현장에 개입하면서 사태는 더욱더 악화됐다. 노조를 지지하는 시민들과 사회단체 관계자 16명이 연행됐고, 이 과정에서 시민 20여명이 다치고 10여 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 경찰은 집시법 위반 등을 이유로 공장 정문에 병력을 배치한 뒤, 공장내 물품들이 반출되자 병력을 철수시켰다.

“노사문제는 신뢰문제인데, 사측은 일단 신설회사에서 일하고 2년 뒤에 결정하자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1100일 동안 우리가 요구한 것은 기륭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라는 거였어요. 우리는 임금 안 받아도 좋으니 자회사를 설립해서 복직되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이야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기륭전자는 저희가 자신들의 회사에 복직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고 있어요.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거죠.”

계속되는 사측의 방송을 들으며, 윤종희 조합원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기도 하고 눈물이 눈가에 맺히기도 한다. 만 하루동안 철탑을 중심으로 경찰과 대치하고, 사측과 대치하면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사람인가 싶어요. 미친 개도 저렇게는 안할 거예요. 사람이 양심을 가졌다면, 사람이 얼굴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겠어요. 경찰도 노사 문제에 개입 안 한다고 하더니, 폭력 행위는 방기하고 ... 이제, 기륭전자의 사병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니...”

3년전, 노조를 만들었다고 좋아했던 기륭분회 노동자들.

그들은 “문자로 해고 통지를 받았는데, 조합에서 이를 문제 삼자 곧바로 해고가 취소됐다”며 “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대량 해고 사태를 촉발하는 법제 개편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세상이 그래도 많이 민주화 됐으니 옛날로 돌아가겠느냐고. 하지만 웬 일일까. 잘 사는 사람만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사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마치 봉건시대로 돌아간 듯, 상놈 취급당하던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면 밥그릇 뺏기고 공장 밖으로 쫓겨나고 있으니.


작성일: 2008-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