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자(46)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2,500여 명의 전남지역 학교비정규직들이 오는 17일 전남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출범시키면서 각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전남 비정규직 노조 출범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다.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두 달이 채 못 되는 시간에 2,500명의 학교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출범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면서 힘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일이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전남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 출범의 이면에는 박금자 위원장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박금자 위원장은 순천 지역의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16년간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운 전형적인 ‘급식아줌마’다.

급식아줌마 박금자씨가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 2004년께. 박씨는 주5일 아침7시50분에 출근해서 오후 5시까지 주방일과 청소일을 하고, 월1회 토요일에도 출근해서 일하는 데 한달 받는 월급은 84만 5600원에 불과했다. 급식아줌마들 중 많은 사람이 ‘여성가장’임을 감안하면 한 가정을 꾸리기에 턱없는 금액이다.

하지만 급식아줌마들의 고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부분 무기계약 조건의 비정규직이어서 10년 넘게 일을 해도 아무런 수당이 없는 것. 1년차 급식아줌마나 10년차 급식아줌마나 똑같은 월급을 받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전남지역의 특성상 학생인구의 지속적인 감소로 학교간 통폐합이 이뤄지는 상황이어서 그나마 ‘이 일도 못하면 어떻게 하나’는 고용불안에 상시적으로 시달려야했다.

고용불안에 일상적으로 짓눌려 있는 급식아줌마들은 자연히 생활에서도 무기력하고, 사소한 불만도 표출하지 못했다. ‘혹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학교에 밉보여서 재계약이 안 되면 어떻게하나’라는 불안감도 신경써야했기 때문이다. 학교 눈치 때문에 노조설립 역시 언감생심 꿈도 못꾸던 박씨였다.

그러던 중 전남지역 교육계에 커다란 변화가 왔다. 6.2 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장만채 교수가 교육감에 당선된 것. 장만채 교육감은 후보시절부터 학교 비정규직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공약했으며, 비정규직 노조 설립시 막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당선 후 약속을 지켰다.

따라서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해도 ‘해고’되지 않는다는 자유로움이 박씨에게 생겼다. 박씨는 8월부터 전라남도 내 22개 시·군 곳곳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함께 하자고 비정규직들을 설득했다.

박씨의 제안에 일선 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들끓었다. 알고보니 박씨가 느꼈던 고충은 전남도교육청 산하 공·사립학교에 근무하는 무기계약 3546명과 기간제 2595명 등 총 12개 직군 6,141명 모두가 느끼는 고충이었다.

이와 더불어 장만채 교육감은 9월 4일 발표한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안은 다시 한 번 학교 현장 분위기를 한껏 높혔다. 처우개선안은 △근속가산금(월 3만∼8만원) 신설 지급 △현행 1인당 연간 10만원 수준인 맞춤형 복지비를 20만원으로 인상 △3인 가족 최저생계비(2010년 기준)이상으로의 임금 인상 △각종 후생복지 및 사기진작 방안을 골자로 했다.

이 같은 변화에 노조 가입 신청은 급속도로 이뤄졌다. 학교별 집단 가입이 줄을 이었고, 노조가입 문의전화도 폭주하고 있는 상황. 박 위원장은 “전남 지역에 특성상 섬 지역이 많아 몰라서 가입을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 앞으로 더 열심히 전남 구석구석을 돌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 학교 비정규직, ‘전남 대단하다’

전남 학교비정규직 노조 출범에 서울,경기,강원,전북 등 다른 지역 학교 비정규직도 적지 않게 영향을 받는 눈치다. 다른 지역 학교비정규직도 노동조건이나, 근무여건등 상황이 열악한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이정호 미조직비정규실장은 “전남지역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 출범에 다른 지역이 크게 고무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일단 진보교육감 당선지역을 중심으로 11월에는 활발하게 노동조합 가입 신청을 받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별로 교육청과 근무조건 개선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남에서 시작한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의 불길은 신속하게 주변 지역으로 옮아 붙고 있다.
일단 당장 13일 경남도교육청은 5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 직원을 대상으로 장기근속수당을 지급한다고 밝힌 것.

‘학교회계직원 경력인정제’이라는 명칭으로 내년 시행되는 제도는, 학교비정규직 근속연수에 따라 5년~10년차에게는 연 24만원, 10년 이상~15년차에게는 연 36만원, 25년차 이상에게는 최대 연 72만원의 장기근속수당을 추가로 지급한다.

박금자 씨는 “노조 가입자가 많이 늘어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전남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지역과 연대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전국 단위로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 학교비정규직 노조 출범식은 17일 오후 2시 순천 팔마체육관에서 개최되며,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장만채 전남 교육감, 정우태장흥시의원, 유현주 도의원과 전교조 전남지부 등이 참여한다.


작성일: 201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