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객에게 폭언과 욕설을 듣고도 회사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현대자동차 콜센터 상담사 A씨의 우울증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하지만 산재가 승인된 이후에도 용역업체는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취업규칙에 따라 A씨의 건강장해를 예방할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보호 매뉴얼 있는데, 어떤 조치도 않은 회사

2011년부터 콜센터 상담사로 일한 A씨는 여러 업체를 거쳐 2018년 10월부터 현대자동차 고객센터 상담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9년 1월부터는 용역업체가 바뀌어 효성ITX 소속이 됐다. 그러다 2022년 6월 문제의 고객 B씨의 전화를 받았다. A씨는 고객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여러 번 비슷한 질문을 했다. “여러 번 말씀드려 죄송하다”며 상담을 이어 가려 했지만 B씨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 취급을 한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A씨는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B씨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현대자동차 본사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사과)을 동원하라”며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30분 넘는 전화 끝에 A씨는 크게 마음을 다쳤고 이후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나날이 계속됐다. 무엇보다 A씨를 힘들게 한 건 회사 내 ‘고객응대 근로자 건강보호 매뉴얼’이 있는데도 상사가 어떤 보호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직속 상사인 파트장의 고함도 A씨를 힘들게 했다. A씨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해당 고객을 신고하고 싶다고도 말했으나 묵살당했다.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 A씨는 그 사건 이후에도 민원인의 폭언이나 욕설에 시달렸지만 상사는 “전화를 먼저 끊으려면 현대자동차 본사에 확인 요청을 해야 한다”며 전화를 끊을 수조차 없게 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A씨는 지난 8월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에 만성우울장애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 달라며 요양급여 신청을 했고 최근 서울남부지역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A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질병판정위는 “콜센터 업무 특성상 고객응대 과정에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됐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2022년 6월 악성고객에게 여러차례, 장시간에 걸쳐 사과를 반복해야 했던 사실이 확인된다”며 “민원인과의 갈등, 그로 인해 발생한 상사와의 갈등 등의 스트레스로 증상이 시작된 것으로 보여 신청 상병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콜센터 노동자 산재신청, 적극 나섰으면”

산재가 승인된 뒤 2주간 무급병가를 쓰고 지난달 복직한 A씨는 회사에 산재승인 사실을 알리며 다른 부서로 업무 전환을 요청했다. 2022년에도 다른 상담사가 건강 문제로 보직 전환한 사례가 있었다. A씨는 차선책으로 사람을 덜 마주칠 수 있도록 출·퇴근시간을 30분 늦춰 달라고도 부탁했다. 그러나 10일이 지나도록 답변이 없어 회사쪽에 재차 요구하자 “본인에게만 혜택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효성ITX 같은 대기업에서 취업규칙·산업안전보건법·매뉴얼 하나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다”며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효성ITX에서 산재를 인정받은 상담사가 내가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폐쇄적”이라고 비판했다.

효성ITX 취업규칙에는 “회사는 (직원의) 상병상태를 신속히 회복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항에 대해 협조한다”고 명시돼있다. 또 악성민원 대응 전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홍보하거나 악성민원 피해자에게 법적 대응을 지원하겠다고 알리고 있지만 A씨는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산업안전보건법 41조에는 “사업주는 업무와 관련해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A씨는 무엇보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질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A씨는 “주변 상담사들은 업무로 인한 우울증이 산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며 “상담사들이 산재 신청에 적극 나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에게서 바란 것은 무엇보다 ‘사과 한 마디’ ‘책임을 인정하는 한 마디’였다”며 “콜센터 대기업인 효성ITX가 제 역할을 다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일노동뉴스>는 효성ITX의 입장을 받기 위해 인사팀에 문의했지만 회신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