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다.

13세 가녀린 소녀가 느꼈을 육체적·정신적 고통 앞에 마음이 저렸고, 그 소녀가 80세 노모가 될 때까지 그들을 외면했던 우리 현실이 죄스러웠다.

할머니들의 외로운 투쟁에 힘을 보태주는 일본인 지원단, 그들의 참된 용기가 눈물겨웠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무차별적인 인력수탈에 의해 강제노동 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20년 넘게 활동해 온 일본 ‘나고야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 사무국장인 고이데 유타카(66)씨가 광주를 찾았다.

19일, 광주시 광산구 신가동 소재 광주시민센터에서 마련한 ‘아직 오지 않은 해방, 조선여자근로정신대를 말한다’ 초청대담에서 고이데 유타카 부부와 근로정신대 양금덕(80)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뭣 모르던 13살 어린 나이. 일본 가면 중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벌게 해준다는 일본 담임선생님 말에 속아 일본행에 오른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일본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에 강제동원 돼 임금 한 푼 받지 못하며 10시간 넘는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해방 되면 달라질까, 내심 기대했던 마음은 사람들의 왜곡된 편견과 시선에 물거품이 됐다.

“사람들이 근로정신대를 위안부로 아는 거야. 혼담이 오가다가도 일본 갔다온 걸 알게 되면 혼사가 물거품되기 일쑤였지. 그래도 어렵사리 결혼을 해서 살다가 남편이 내가 일본에 다녀왔다는 걸 알게 된거야. 몇 놈이랑 뒤섞였냐고 더러운 년이라고 욕하고 매질을 하대”

당시 생각에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지 양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모진 목숨 못 죽고 겨우 살아왔다”는 한 맺힌 할머니 말에서 그간 할머니가 당했을 고통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판자촌이나 다름없는 곳에 사는 할머니는 빈곤한 생활에 몸이 아파도 약조차 사먹을 돈이 없다.

“내가 많이 바라는 거 아니여.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죽기 전에 우리 명예회복이나 좀 해주고, 아플 때 약이나 사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건데, 그게 그렇게 어렵남?” 할머니는 그렇게 서글픈 울분을 토해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가냘픈 외침에 손을 내민 건 뜻밖에도 일본인이었다.

1986년 역사교사 재직 시절, 태평양 전쟁 조사과정에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존재를 접하게 된 일본인 다카하시 마코도(65)씨와 고이데 유타카씨는 이들의 뼈아픈 사연에 귀 기울였다.

이들은 당시 희생자를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수소문 한 끝에 어렵사리 명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곤 곧바로 신문기사를 통해 근로정신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신문에 기사를 내보내자마자 여기저기서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대부분 정신대 할머니들과 비슷한 연배의 분들이 전화를 해 왔다. 당시 그 정도 고생은 일본 사람들도 다 했다며 근로정신대 문제는 특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유타카씨 말에서 알 수 있듯 일본 내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고야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이하 지원회)’를 꾸려 본격적으로 힘을 보탰다.

변호사 40여명과 일본 시민 1천명이 속한 지원회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자유족회’를 도와 1999년 3월 1일,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사를 상대로 나고야 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일 협정을 근거로 청구권이 소멸됐다며 기각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 지루한 싸움은 9년째 계속되고 있다. 

유타카씨는 이에 대해 “재판 목적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이다. 이들은 당시 어린 나이엔 견디기 힘든 강제노동은 물론 정당한 대가인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들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다각도에서 이뤄졌다. 일본 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자료집과 책자를 발간·배포, 2003년에는 근로정신대 문제를 다룬 연극 ‘봉선화’ 공연, 2005년에는 ‘그 소녀들을 잊을 수 없다’는 제목으로 연주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최고재판소의 최종 승소를 끌어내기 위해 2시간 거리의 도쿄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매주 금요일 원정시위를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연 3천엔씩 회비를 걷어 활동비로 사용,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양 할머니를 포함 원고 8명의 교통비와 체류비 일체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에도 양심이 있다”는 걸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이들. 20여년 동안 계속돼 온 이들의 물심양면 지원사격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한·일 양국은 이를 정치적 문제로 이용만 하고 있다. 역사를 너무 옅게 희석시키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정작 중요한 사안은 미뤄둔 채 주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다. ‘강제노동 인정’을 시발점으로 인식변환 계기가 돼 한·일관계의 새로운 전환이 되길 바란다” 유타카씨의 말이다. 과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아픔이 깃든 왜곡된 역사 앞에 당당히 맞선 이들. 국경도 초월한 이들의 노력과 간절한 바람이 하루속히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 이라는 결실을 맺길 바란다.

                  -  시민의 소리  -


작성일: 2008-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