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70m 굴뚝에서 장장 86일간 농성을 했던 서맹섭(34) 쌍용차 비정규지회 부지회장은 아직도 귓가에서 헬기소리가 들리는 듯해 밤잠을 못이루고 있다.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귓가에 '두두두두' 헬기소리가 계속 들려서 잠도 못자고 있어요."
86일간 굴뚝 고공농성을 벌인 서맹섭(34) 쌍용차 비정규지회 부지회장. 그는 현재 역류성 식도염, 식도궤양, 위염 등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다. 12일 오후 병원에서 서 부지회장을 만났다.ⓒ 민중의소리
새까맣게 탄 얼굴에 몸무게가 10kg 넘게 빠져버린 서씨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안쓰럽다. 서씨는 지난 6일 굴뚝에서 내려온 뒤 곧바로 경찰조사를 받고 현재 박애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역류성 식도염, 식도궤양에 위염까지. 고공농성 기간 불규칙한 식사와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속병이 생긴 그는 농성 막판 열흘은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 못해 탈진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서씨는 "죽다 살아났다"는 말로 당시를 표현했다.
병원에서 안정을 취해야 할 그가 쉽게 잠을 못이루고 있는 데는 이명(耳鳴)과 불편한 몸상태 때문 만은 아니다. 서씨의 불면증 원인의 8할은 밖에 남아있는 비정규 동료들에 대한 걱정이다. '죽은 자' 2674명에도 끼지 못한 채 소리소문 없이 잘려나가는 비정규직들의 고용보장을 위해 굴뚝에 올라갔던 그였다. 결국 비정규직 고용유지와 관련 점거농성에 참여한 19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경우 비정규직으로 고용을 유지하게 됐지만 합의서의 내용이 그대로 지켜질지는 아직까지 '물음표'다.
서씨는 "사측이 합의서대로 해야 될텐데 요즘 하는 걸로 봐서는 잘 모르겠다"며 "또 (굴뚝에)올라가야 하나 그게 제일 우려스럽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토로했다. 실제 노사합의는 됐지만 현재 구속자는 늘어나고 있고, 실무협의는 조속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서씨는 물론 농성을 풀고 나온 조합원들도 불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솔직히 회사에 정나미가 다 떨어져서 복귀를 해야할지 어때야할지 착잡한 마음입니다. 실제 복귀가 될지 안될지도 모르겠구요. 하지만 저는 복귀가 안되더라도 저를 믿고 따라온 18명의 동지들은 반드시 공장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만약 안되면 정문 앞에 다시 컨테이너라도 칠 겁니다."
그는 개인적으론 '원하청 공동투쟁'을 이번 투쟁의 첫번째 성과로 꼽았다. 그동안 쌍용차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는데 77일간 '전장'에서 함께 부대끼면서 결코 허물어질 것 같지 않아 보이던 벽들이 완전히 허물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정규직 동지들은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잘 몰랐는데 이번 투쟁을 통해 그 부분을 많이 알게 된 것 같더라구요. 굴뚝에서 눈물겹게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전해들었습니다. 일례로 주먹밥이 두개씩 나오면 정규직 동지들이 자기 주먹밥 하나를 뚝 떼서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주면서 '힘내자', '꼭 승리하자'고 챙겨주고 격려해줬다는 겁니다. 저는 합의서고 뭐고 다 떠나서 그것만으로 승리했다고 봅니다."
굴뚝 위에서 "지든 이기든 건강하게 내려와서 막걸리 한 잔 하자"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격려문자와 편지 등을 전달받고 눈물 깨나 쏟았다는 서씨. 이번 투쟁을 두고 실패한 투쟁, 노조가 진 싸움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도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움튼 뜨거운 동지애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쌍용차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달려온 각계각층에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거듭 밝혔다. "연대동지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몸 추스리고 나면 쌍용차보다 더 어렵게 투쟁하는 분들께 몸 아끼지 말고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민중의 소리 -
작성일: 200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