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는 지난 27일 구로구 독산동에 위치한 노보텔에서 주주총회를 열어 올해에는 셋톱박스, HD및 위성라디오, 디지털가전, 보안, 에너지 분야 등으로 매출 변화를 꾀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기륭전자가 회사 명칭을 바꿀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행사장에 참석한 주주들은 그 같은 내용을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총회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하던 기륭전자 김영창 이사도 “그런 이야기는 있었는데, 발언하시는 분이 없더라”며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20분 남짓 짤막하게 진행된 주주총회는 기륭전자의 ‘도약’을 거론하는 자리가 됐다. 하지만 기륭전자의 ‘도약’ 어디에도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액주주로서 총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나, 이마저도 너무나 간단하게 박탈당하고 말았다.

당시 총회장 입구를 지키던 기륭전자 박동준 이사의 설명대로라면,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못한 데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로가 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전에 경제인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노보텔을 빠져나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기륭전자 주주총회는 9시부터 열릴 예정이었다.

오전 8시부터 총회장 앞에서 고용보장을 요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8시 40분경, 피켓 등을 내리고 총회장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러자 경찰 수백명이 입구를 봉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소액주주라는 사실을 밝히며 “들여보내 달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경찰은 “욕설하는 사람은 채증해서 잡아라”는 말로 위협을 가하며 총회장 참석을 막았으며, 그 이유는 끝까지 함구했다.

기륭전자와 경찰의 해묵은 ‘합동작전’이 펼쳐진 것으로 오해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항의하거나, 총회장을 향해 뛰어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그럴 때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전의경들과 건장한 형사들이 막아 나섰고, 이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길바닥으로 나가떨어지기를 거듭할 뿐이었다. “너무 기가 찰 노릇”이라며 울분을 터뜨려도, 누구하나 거들거나 도와주는 이가 있을 수 없었다. 노보텔 앞은 경찰로 가득찼다. 세미나를 끝내고 오 시장보다 앞서 나온 몇몇 참가자들은 이들이 "오세훈 시장을 반대하는 사람인 줄"로 알 정도였다.

경찰이 이들의 주주총회 입장을 가로막은 이유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차에 올라 현장을 떠난 뒤에야 알려졌다. "1000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오세훈 시장"의 신변보호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그 사실을 ‘비밀’에 붙인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혹자는 주주로서 총회에 참석하려는 것을 경찰 수백 명으로 막은 것 자체가 그들의 ‘자유시장주의’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운 “또, 오세훈이냐. 또 오세훈이냐”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는 오 시장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김 분회장은 9시 10분경, 총회장 앞에서 박동준 이사와 회사 측이 고용한 경비들에 의해 회장 출입을 거부당하자 이 같은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박 이사는 “시간이 늦으면 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김 분회장과 다른 노동자들을 막았다. 김소연 분회장은 “그런 규정은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주주총회를 하는데 주주가 참여해야지 이렇게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이사는 경비들을 앞세워 힘으로 막아설 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초상권 침해’라며 취재를 방해하기도 했다.

결국 이날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만이 아니라 서울시민으로서, 소액주주로서 권리조차 외면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들은 언론을 통해 회사에 대한 자신들의 걱정과 우려를 강하게 피력했다.

“(기륭전자는) 현재 405억에 부지를 매각하고 69억짜리 신사옥을 구입해 입주해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차액은 빚을 청산하고 나머지는 투자를 해서 회사를 발전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기륭전자는 2차 구조조정을 또다시 단행해서 약 30여명의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잘 나가고 있다고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잘되는데 인원은 축소한다?’ 이는 심각한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 기륭전자 경영진들은 ‘노동조합이 어떠한 위력도 발휘하기 힘든 상태이며, 엠프를 동원한 집회조차도 어려울 정도라서, 이들의 존재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하다’며 노사간의 문제는 해결되어 가고 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봤을 때 현재 대 주주 및 경영진들은 기륭전자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발전시킬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륭전자 분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날 주주총회 불참사태와 관련 31일 오세훈 서울시장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기륭전자 측의 해명대로라면, 소액주주로 참여하려던 권리를 직접적으로 박탈한 것은 경찰과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물론 기륭전자가 억지 주장을 했더라도 이미 발생한 27일의 사건과 관련, 경찰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디 우여곡절이 이번 만이었겠는가. 30일 현재,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 1315일, 농성 1261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  민중의  소리  -

작성일: 2009-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