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유럽이 요동치고 있다.

페렌츠 주르차니 헝가리 총리가 지난 21일 경제위기 책임에 따른 퇴진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 내각 수반이 사퇴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달초 페렌츠 주르차니 총리는 글로벌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동유럽 9개국을 대표해 EU 정상회의에 특별펀드 조성을 요청하며, "만약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철의 장막'이 유럽 대륙을 가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주르차니 총리와 현재의 집권 사회당은 사민주의적 분배와 복지확충을 내걸고 당선됐으나, 블레어식 '제3의 길'을 주장하며 교육 및 의료혜택의 축소 등 친 재계적인 정책을 추진해왔다. 지난달 초 의료보험 민영화 법안의 표결을 앞두고는 시위대가 여당 의원들의 집에 화염병을 퍼붓기도 했다.

주르차니는 헝가리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 민영화된 기업을 사들여 재계의 거물로 떠오른 인물로, 지난 2006년 가을 (4월)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경제실적을 속였다고 말한 그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위기에 처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아이슬란드와 라트비아 총리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총리들의 연이은 사퇴와 함께 프랑스, 그리스, 독일 등 유럽 각 지역에서는 대규모 봉기와 파업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정치-사회적 위기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돈을 돌려달라"

현재 유럽국가들에서 번지고 있는 반정부시위의 배경에는 임금 삭감과 복지예산 축소 등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경기부양책'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깔려있다.

경제위기 이후 영미권은 물론이고 유럽의 기업들도 대량해고와 공장폐쇄 등 고용주를 위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정부는 은행과 기업에 천문학적 금액을 지원하면서도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정책을 펴왔다.

이는 글로벌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동유럽은 물론이고 서유럽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상인데, 프랑스에서도 지난 1월에 이어 최근 300만명이 참가하는 총파업이 벌어졌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1월 250만명이 참여하는 파업이 벌어졌고, 이어 지난 19일의 2차 파업은 300만명으로 그 규모가 불어났다. 78% 프랑스인들의 지지를 받았던 2차 총파업은 프랑스국영철도(SNCF), 파리교통공사(RATP), 버스, 공항 등 운송부문 노동자들과 가스공사, 전력공사, 우체국, 공무원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주도했다. 프랑스국영철도(SNCF)는 고속열차 중 40%가 운행을 멈췄다.

특히 이번 총파업은 공공부문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민간부문 노동자들과 실업자를 포함한 군중들이 가세하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사르코지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경기 부양책을 추진하지만 노동자보다는 기업과 금융계로만 돈이 흘러가면서 결국 '부자'들만을 위한 대책을 추진한다"고 비난하며 "고용보장과 임금인상, 고수익자들에 대한 세금 인상, 공공부문의 해고 중단" 등을 요구했다.

이외에도 유럽 각지에서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26일에는 독일 오펠 노동자 15000명이 지엠(GM)의 유럽공장 폐쇄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했고 1천명 이상의 그리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지난 3월 17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라'며 아테네를 행진했다.

또한 연립 정부가 붕괴되며 2월 26일 새로운 총리가 지명된 라트비아에서는 농민들이 소득하락을 보존해 달라고 파업을 단행해 농림부 장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또 2월 23일 수백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빅토르 유시첸코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그들의 요구는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은행들은 우리의 돈을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동유럽으로 향하는 세계의 시선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같은 상황들은, '부자와 대기업들의 위기'를 노동자와 서민에게 전가하는 방식의 위기극복정책을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거리에 나온 프랑스인들도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은 지금까지 사르코지 정부가 취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대응, 기존과 다른 규모의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고 외쳤다.

국제사회는 특히 동유럽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는 대외채무 비중이 높고 투기자본의 공격에 취약해 헝가리를 비롯한 5개 국가가 이미 IMF 구제금융을 요청한 상태다. 현재 이들 국가의 연쇄적인 디폴트 위기는 높아지고 있는데, 내적으로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EU 통합 과정까지 계속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태다.

                          -  민중의  소리  -


작성일: 2009-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