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교육국장)
앞에서는 비정규직법 공방, 뒤에서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참혹한 현실 6월 달, 세상이 좀 시끄러웠다. 노동부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유포한 100만 대량해고설 때문이다. 그러나 딱 그 때 뿐이었다. 7월이 되면서 사실상 가시적인 해고대란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정규직법의 문제 역시 수면위로 가라앉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비정규직법을 가지고 한바탕 공방을 벌일 때에도 전국 곳곳의 비정규직들은 해고에 떨거나 외주화를 강요받거나 회사의 돌려막기 때문에 계약서를 몇 번이나 다시 쓰면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들만의 공방 속에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더 큰 사회문제는 비정규직법 적용 이후 근로빈곤층으로의 전락하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삶
100만 해고 대란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드러났어도 여전히 비정규직법을 둘러싸고 ‘해고’의 문제는 진행형이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는 그 현상 하나만이 아니라, 그 이후 파탄 난 삶을 살아야 하는 비정규직들의 현실에서 문제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시행 2년이 지난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시적으로 2년 이내에 해고 되거나, 교체사용 되거나, 외주화 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삶도 빈곤해졌다.
비정규직법 시행이후 상시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난 해고는 계약기간 만료 이후에 더 이상 계약을 갱신하지 않거나 기간제 노동자가 일했던 업무를 아예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이미 현장에서는 반복적 기간제노동자 사용을 위해 3개월, 6개월, 10개월 등의 초단기 계약이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새로 채용하기에는 많은 부담이 있는 기업 측이 기존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법망을 피해가며 무리 없이 쓰기 위함인데, 최근에 보훈병원과 산재의료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초기 1년 계약에서 6개월, 3개월 단위로 갱신한 것이 그 사례이다.
이 비정규직노동자들은 09년 들어서는 1개월로 계약하면서 결국 6월 30일로 날짜를 맞춰 기획해고를 당했다. 이처럼 상시적인 해고와 초단기 계약을 통한 교체사용을 통해 불안한 삶을 지속한다. 삶을 더 계획하지도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지도 못한다.
여기에 더 문제는 법적으로도 노동조건으로도 더 열악한 비정규직으로 전락한다는데 있다. 최근 몇 년 간 기간제 노동자의 해고의 대부분은 회사측의 ‘외주화’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나타난다. 비정규직법을 빌미로 외주화를 강요하고 있는 사례 또한 빈번하다.
최근 서울대병원은 몇 년 동안 지속했던 업무를 갑자기 한시적 업무로 규정하더니 업무를 외주화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했다. 애초부터 외주화를 할 목적이었던 서울대병원은 비정규직법을 빌미로 외주화를 합리화했다.
KBS 계약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KBS는 420명에 이르는 사내 연봉계약직(기간제) 직원을 비정규직법을 이유로 해고하고 있는데, 이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자회사로 전적시킬 계획을 비정규직법을 활용하여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420명의 노동자 중에 293명에게 자회사 전적을 강요하고 있고, 최초 계약해지자 89명 이외에 전적을 거부하는 연봉계약직도 차례로 해고의 위협에 쌓여 있다. 07년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게 된 것은 계약직이었던 노동자들에게 외주화를 강요하면서 외주화를 받지 않으면 계약해지 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외주화를 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은 해고가 된다.
외주화가 된 이후에는 더 쉽게 노동자들을 자를 수 있기 때문에 고용은 더욱 불안해 진다. 고용뿐만 아니라 임금도 노동조건도 더욱 하락한다. 얼마 전 한 취업소개 기관에서 조사한 설문에서 응답자인 직장인 70.1%가 스스로를 ‘근로빈곤층 (working poor) 라고 답해서 충격이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이유로 70.3%가 압도적으로 ‘월급으로 한 달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빠듯해서’라고 답변했다.
그 외에도 ‘당장 일을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서’, ‘언제 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형태 때문’ 이라고 말해 비정규직문제는 이제 ‘해고’라는 단순한 사실 하나를 넘어 삶을 파괴하는 구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문제는 이제 단순히 내용 없이 고용을 유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살아는 있으되 인공호흡기를 댄 것 같이 살아가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삶을, 해고가 되고나서 살기위해 외주화, 단시간 근로, 초단기계약 같은 인공호흡기를 어쩔 수 없이 대고 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이제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간 비정규직법, 더 이상 공방하지 말고 없애라
이제 다시 9월 정기국회가 열리면 비정규직법이 다뤄질 것이다. 벌써부터 한나라당에서는 원점에서 전면재검토를 하겠다고 하다가 다시 수정안을 들고 나오겠다고 오락가락한다. 그러면서 다시 뒷전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이 만든 ‘비정규직법’을 옹호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지원금 등을 주장하였지만 여전히 관심은 없다. 오히려 자신들이 만든 과오에 대해서 시인할 줄 모른다. 아니라는게 드러났는데도 비정규직법이 정규직 전환법이라고 주장하기만 한다.
9월 정기국회에서는 여전히 비정규직법 기간 문제 (유예 혹은 연장, 기간제한 없애기), 정규직 전환 지원금 집행, 차별 시정 등을 가지고 여야가 공방을 벌일 것이다. 물론 9월 정기국회가 열려도 지난 6월처럼 핵심법안으로 다뤄지지 않을 것이 더 자명하겠지만, 더 이상 산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고 인공호흡기를 대는 방식으로 자기들만의 공방은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다.
진정 비정규직노동자들을 걱정한다면 일말의 도움도 안 되는 기간제법, 파견법을 없애는 것부터 원점에서 논해야 한다.
- 민중의 소리 -
작성일: 2009-08-25